조 토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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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 토레의 수상 경력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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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욕 양키스 No. 6 | |
조셉 폴 "조" 토레 (Joseph Paul "Joe" Torre) | |
생년월일 | |
국적 | |
출신지 | |
포지션 | |
투타 | |
프로입단 | |
소속구단 | |
지도자 | 뉴욕 메츠 감독 (1977~1981)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(1982~1984)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(1990~1995) 뉴욕 양키스 감독 (1996~2007)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(2008~2010)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(2013) |
1. 소개 [편집]
파일:external/cdn.fansided.com/torrejoe.jpg
미국의 야구선수, 야구감독.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시즌 동안 뉴욕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으며, 토레가 지휘하는 동안 양키스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적이 없다. 총 10차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, 6번의 리그 챔피언과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(1996, 1998-2000[2])를 획득했다. 통산 .605의 승률과 2,326승을 기록한 명장이다.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,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을 획득했다.
미국의 야구선수, 야구감독.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시즌 동안 뉴욕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으며, 토레가 지휘하는 동안 양키스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적이 없다. 총 10차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, 6번의 리그 챔피언과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(1996, 1998-2000[2])를 획득했다. 통산 .605의 승률과 2,326승을 기록한 명장이다.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,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을 획득했다.
2. 선수 시절 [편집]
메이저리그가 국내에 알려질 때는 이미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알려져서 선수 시절 명선수라는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. 그러나 실은 조 토레는 선수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다. 1960년에 데뷔, 통산 3할에 가까운 타율 (.297)과 2,342개의 안타, 통산 9회의 올스타, 1971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고 통산 타율-출루율-장타율 .297-.365-.452를 기록한 강타자이다.
특히 포수로서는 자니 벤치라는 강자에 가려서 2인자 이미지였지만 공격형 포수로서 손꼽히는 선수이다. 1971년 30세 시즌부터는 3루수로 전향해 MVP를 따는 등 강타자로 커리어를 연장했고, 1977년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에서 은퇴한다. 선수 시절 4연타석 병살타라는 흠좀무(...)한 경기를 한 적이 있다.[3]
특히 포수로서는 자니 벤치라는 강자에 가려서 2인자 이미지였지만 공격형 포수로서 손꼽히는 선수이다. 1971년 30세 시즌부터는 3루수로 전향해 MVP를 따는 등 강타자로 커리어를 연장했고, 1977년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에서 은퇴한다. 선수 시절 4연타석 병살타라는 흠좀무(...)한 경기를 한 적이 있다.[3]
3. 선수 성적 [편집]
역대 기록 | |||||||||||||||||
연도 | 소속팀 | 경기 | 타석 | 안타 | 2루타 | 3루타 | 홈런 | 득점 | 타점 | 도루 | 볼넷 | 삼진 | 타율 | 출루율 | 장타율 | OPS | fWAR |
1960 | 2 | 2 | 1 | 0 | 0 | 0 | 0 | 0 | 0 | 0 | 1 | .500 | .500 | .500 |
| 0.0 | |
1961 | 113 | 441 | 113 | 21 | 4 | 10 | 40 | 42 | 3 | 28 | 60 | .278 | .330 | .424 | .754 | 3.0 | |
1962 | 80 | 248 | 62 | 8 | 1 | 5 | 23 | 26 | 1 | 24 | 24 | .282 | .355 | .395 | .750 | 2.0 | |
1963 | 142 | 556 | 147 | 19 | 4 | 14 | 57 | 71 | 1 | 42 | 79 | .293 | .350 | .431 | .781 | 4.4 | |
1964 | 154 | 646 | 193 | 36 | 5 | 20 | 89 | 109 | 2 | 36 | 67 | .321 | .365 | .498 | .863 | 5.8 | |
1965 | 148 | 594 | 152 | 21 | 1 | 27 | 68 | 80 | 0 | 61 | 79 | .291 | .372 | .489 | .862 | 5.2 | |
1966 | 148 | 614 | 172 | 20 | 3 | 36 | 83 | 101 | 0 | 60 | 61 | .315 | .382 | .560 | .943 | 6.9 | |
1967 | 135 | 534 | 132 | 18 | 1 | 20 | 67 | 68 | 2 | 49 | 75 | .277 | .345 | .444 | .790 | 5.0 | |
1968 | 115 | 464 | 115 | 11 | 2 | 10 | 45 | 55 | 1 | 34 | 72 | .271 | .332 | .377 | .709 | 2.6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 | 타석 | 안타 | 2루타 | 3루타 | 홈런 | 득점 | 타점 | 도루 | 볼넷 | 삼진 | 타율 | 출루율 | 장타율 | OPS | fWAR |
1969 | 159 | 678 | 174 | 29 | 6 | 18 | 72 | 101 | 0 | 66 | 85 | .289 | .361 | .447 | .808 | 3.3 | |
1970 | 161 | 704 | 203 | 27 | 9 | 21 | 89 | 100 | 2 | 70 | 91 | .325 | .398 | .498 | .896 | 6.0 | |
1971 | 161 | 707 | 230 | 34 | 8 | 24 | 97 | 137 | 4 | 63 | 70 | .363 | .421 | .555 | .976 | 6.9 | |
1972 | 149 | 613 | 157 | 26 | 6 | 11 | 71 | 81 | 3 | 54 | 64 | .289 | .357 | .419 | .776 | 3.4 | |
1973 | 141 | 596 | 149 | 17 | 2 | 13 | 67 | 69 | 2 | 65 | 78 | .289 | .376 | .403 | .779 | 2.6 | |
1974 | 147 | 611 | 149 | 28 | 1 | 11 | 59 | 70 | 1 | 69 | 88 | .287 | .371 | .401 | .772 | 3.2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 | 타석 | 안타 | 2루타 | 3루타 | 홈런 | 득점 | 타점 | 도루 | 볼넷 | 삼진 | 타율 | 출루율 | 장타율 | OPS | fWAR |
1975 | 114 | 400 | 89 | 16 | 3 | 6 | 33 | 35 | 0 | 35 | 55 | .247 | .317 | .357 | .674 |
| |
1976 | 114 | 340 | 95 | 10 | 3 | 5 | 36 | 31 | 1 | 21 | 35 | .306 | .358 | .406 | .764 |
| |
1977 | 26 | 54 | 9 | 3 | 0 | 1 | 2 | 9 | 0 | 2 | 10 | .176 | .204 | .294 | .498 | -0.6 | |
MLB 통산 (18시즌) | 2209 | 8802 | 2342 | 344 | 59 | 252 | 996 | 1185 | 23 | 779 | 1094 | .297 | .365 | .452 | .817 | 62.3 | |
4. 명예의 전당 통계(Hall of Fame Statistics) [편집]
블랙잉크 | 그레이잉크 | HOF 모니터 | HOF 스탠다드 | |
조 토레 | 12 | 71 | 96 | 40 |
HOF 입성자 평균 | 27 | 144 | 100 | 50 |
- JAWS - First Base (24th)
career WAR | 7yr-peak WAR | JAWS | |
조 토레 | 57.6 | 37.2 | 47.4 |
1루수 HOF 입성자 평균 | 66.4 | 42.7 | 54.6 |
5. 지도자 시절 [편집]
5.1. 뉴욕 메츠 ~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시절 [편집]
파일:external/mit.zenfs.com/TorreCards.jpg
1977년부터 뉴욕 메츠의 선수 겸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. 그러나 이 당시의 토레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. 메츠를 떠나 친정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그러니까 브레이브스 레전드인 필 니크로와 데일 머피가 브레이브스 시절 유일하게 가을야구를 했던 1982년에 플레이오프에 한 번 밖에 나가질 못 했으니 안습하긴 마찬가지. 그래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일종의 징크스를 따라가나 싶었는데...
1977년부터 뉴욕 메츠의 선수 겸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. 그러나 이 당시의 토레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. 메츠를 떠나 친정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
5.2.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 [편집]
파일:external/www.pittsburghsportingnews.com/Torre.jpg
1996년 뉴욕 양키스와 감독 계약을 하더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뉴욕 양키스가 왕조라고 불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!
특히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, 앤디 페팃, 버니 윌리엄스, 데릭 지터, 호르헤 포사다, 마리아노 리베라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제너레이션을 데이빗 콘, 데이빗 웰스, 폴 오닐 등의 베테랑들과 잘 규합하여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[4]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끄는 데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. 감독으로서 월드시리즈에 6번 진출해 4번을 우승했는데, 모두 양키즈 시절이다.
2007년에는 선수로서 2천승, 감독으로서도 2천승 (총 4천승 이상)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.
양키스빨이라고 이야기를 듣지만, 조 토레 이전 양키스는 혼란기였다. 1981년 디비젼 1위를 한 이후로 양키스는 10년이상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이 없고, 90년대 초반은 오히려 암흑기였다. 7개팀이 있던 당시 디비젼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아메리칸 동부지구에서 5-3-3-2-2-4-5-5-7[5]-5-4 위를 차지했다.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. 이러니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서 임기를 채운 감독이 없다. 이 기간 동안 감독은 밥 레몬 - 진 미카엘 - 클라이드 킹(이상 1982) - 빌리 마틴(1983) - 요기 베라(1984-85) - 빌리 마틴(1985) - 루 피넬라(1986-87) - 빌리 마틴(1988) - 루 피넬라(1988) - 달라스 그린(1989) - 벅키 덴트(1989-1990) - 스텀프 메릴(1990-91)로 바뀌었다. 빌리 마틴의 경우는 이 이전 5년에도 2번이나 감독에 임명되었다가 잘렸기 때문에 이 시기와 합치면 5번이나 임명과 해임을 반복했다. 그나마도 5번에서 그친 것은 1988년 빌리마틴이 사망했기 때문으로, 만일 그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지 않다면 빌리 마틴의 기록은 5번에서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.
이런 감독 잔혹사를 최초로 끊고 4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면서[6] 양키스를 플레이오프로 보낸 인물이 벅 쇼월터이지만 쇼월터도 1995년[7] 15년만에 최초로 양키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[8] 다음에 바로 잘렸다. 이걸로 조지 스테인브레이너는 취임 첫 17년동안 감독을 17번 자르는데 성공했다. 덤으로 브라이언 캐시먼 이전의 단장들은 11번 잘랐다.
그리고 양키스 감독에 오른 인물이 조 토레이다. 1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감독의 후임이고, 더욱이 NL 전통의 강호 브레이브스와 카디널스를 웃음후보로 추락시킨 어두운 과거까지 있는 인물이다보니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, 팀 장악도 제대로 못할 것이란 게 언론의 예상이었다. 이 시기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시기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언급이 있었는데 주요 관심사는 조 토레가 얼마나 오래 감독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였다. 그러나 이 상황에서 조 토레는 부임 첫해에 친정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제물로 개인 통산 첫, 팀에게는 18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고, 한 해 숨을 고른 뒤, 1998년~2000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한다. 4연패도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좀만 더 버텨줬다면 불가능이 아니었다. 양키스에서, 특히 조지 스타인브레너 아래서 12년 연속으로 감독직을 유지하려면 보통 인물로는 무리란 이야기인데, 아무래도 양키스같은 완숙기 구단의 감독이 체질이었던 듯 싶다.
1996년 뉴욕 양키스와 감독 계약을 하더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뉴욕 양키스가 왕조라고 불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!
특히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, 앤디 페팃, 버니 윌리엄스, 데릭 지터, 호르헤 포사다, 마리아노 리베라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제너레이션을 데이빗 콘, 데이빗 웰스, 폴 오닐 등의 베테랑들과 잘 규합하여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[4]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끄는 데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. 감독으로서 월드시리즈에 6번 진출해 4번을 우승했는데, 모두 양키즈 시절이다.
2007년에는 선수로서 2천승, 감독으로서도 2천승 (총 4천승 이상)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.
양키스빨이라고 이야기를 듣지만, 조 토레 이전 양키스는 혼란기였다. 1981년 디비젼 1위를 한 이후로 양키스는 10년이상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이 없고, 90년대 초반은 오히려 암흑기였다. 7개팀이 있던 당시 디비젼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아메리칸 동부지구에서 5-3-3-2-2-4-5-5-7[5]-5-4 위를 차지했다.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. 이러니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서 임기를 채운 감독이 없다. 이 기간 동안 감독은 밥 레몬 - 진 미카엘 - 클라이드 킹(이상 1982) - 빌리 마틴(1983) - 요기 베라(1984-85) - 빌리 마틴(1985) - 루 피넬라(1986-87) - 빌리 마틴(1988) - 루 피넬라(1988) - 달라스 그린(1989) - 벅키 덴트(1989-1990) - 스텀프 메릴(1990-91)로 바뀌었다. 빌리 마틴의 경우는 이 이전 5년에도 2번이나 감독에 임명되었다가 잘렸기 때문에 이 시기와 합치면 5번이나 임명과 해임을 반복했다. 그나마도 5번에서 그친 것은 1988년 빌리마틴이 사망했기 때문으로, 만일 그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지 않다면 빌리 마틴의 기록은 5번에서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.
이런 감독 잔혹사를 최초로 끊고 4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면서[6] 양키스를 플레이오프로 보낸 인물이 벅 쇼월터이지만 쇼월터도 1995년[7] 15년만에 최초로 양키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[8] 다음에 바로 잘렸다. 이걸로 조지 스테인브레이너는 취임 첫 17년동안 감독을 17번 자르는데 성공했다. 덤으로 브라이언 캐시먼 이전의 단장들은 11번 잘랐다.
그리고 양키스 감독에 오른 인물이 조 토레이다. 1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감독의 후임이고, 더욱이 NL 전통의 강호 브레이브스와 카디널스를 웃음후보로 추락시킨 어두운 과거까지 있는 인물이다보니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, 팀 장악도 제대로 못할 것이란 게 언론의 예상이었다. 이 시기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시기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언급이 있었는데 주요 관심사는 조 토레가 얼마나 오래 감독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였다. 그러나 이 상황에서 조 토레는 부임 첫해에 친정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제물로 개인 통산 첫, 팀에게는 18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고, 한 해 숨을 고른 뒤, 1998년~2000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한다. 4연패도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좀만 더 버텨줬다면 불가능이 아니었다. 양키스에서, 특히 조지 스타인브레너 아래서 12년 연속으로 감독직을 유지하려면 보통 인물로는 무리란 이야기인데, 아무래도 양키스같은 완숙기 구단의 감독이 체질이었던 듯 싶다.
5.3.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시절 [편집]
파일:external/latimesblogs.latimes.com/joe_torres_a_dodger_now.jpg
하지만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문제로 양키스와 싸우다 영 좋지 않게 헤어졌고[9],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감독으로 부임한다.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다저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 결과 2년 연속으로 다저스를 지구 챔피언으로 만든다. 그러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거듭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하면서 다시금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한다. 2010년 시즌을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인 돈 매팅리에게 감독직을 물려준 다음 사임한다.
다만 감독생활 내내 불펜 혹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했던 감독이다. 대표적인 예가 불펜투수 주제에 한 시즌에 100이닝을 소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스캇 프락터로, 프락터는 토레 감독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2년 크보의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고 말았다. 오죽하면 프락터가 양아들 소리를 들었을까….
하지만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문제로 양키스와 싸우다 영 좋지 않게 헤어졌고[9],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감독으로 부임한다.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다저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 결과 2년 연속으로 다저스를 지구 챔피언으로 만든다. 그러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거듭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하면서 다시금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한다. 2010년 시즌을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인 돈 매팅리에게 감독직을 물려준 다음 사임한다.
다만 감독생활 내내 불펜 혹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했던 감독이다. 대표적인 예가 불펜투수 주제에 한 시즌에 100이닝을 소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스캇 프락터로, 프락터는 토레 감독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2년 크보의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고 말았다. 오죽하면 프락터가 양아들 소리를 들었을까….
6. 감독 성적 [편집]
역대 감독 전적 | |||||||
연도 | 소속팀 | 경기수 | 승 | 패 | 승률 | 정규시즌 | 포스트시즌 |
1977 | 117 | 49 | 68 | .419 | 지구 6위 | - | |
1978 | 162 | 66 | 96 | .407 | 지구 6위 | - | |
1979 | 163 | 63 | 99 | .389 | 지구 6위 | - | |
1980 | 162 | 67 | 95 | .414 | 지구 5위 | - | |
1981 | 105 | 41 | 62 | .398 | 지구 5위 | -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수 | 승 | 패 | 승률 | 정규시즌 | 포스트시즌 |
1982 | 162 | 89 | 73 | .549 | 지구 1위 | CS 탈락 | |
1983 | 162 | 88 | 74 | .543 | 지구 2위 | - | |
1984 | 162 | 80 | 82 | .494 | 지구 3위 | -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수 | 승 | 패 | 승률 | 정규시즌 | 포스트시즌 |
1990 | 58 | 24 | 34 | .414 | 중도 취임 | - | |
1991 | 162 | 84 | 78 | .519 | 지구 2위 | - | |
1992 | 162 | 83 | 79 | .512 | 지구 3위 | - | |
1993 | 162 | 87 | 75 | .537 | 지구 3위 | - | |
1994 | 115 | 53 | 61 | .465 | 지구 4위 | - | |
1995 | 47 | 20 | 27 | .426 | 중도 해임 | -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수 | 승 | 패 | 승률 | 정규시즌 | 포스트시즌 |
1996 | 162 | 92 | 70 | .568 | 지구 1위 | WS 우승 | |
1997 | 162 | 96 | 66 | .593 | 지구 2위 | DS 탈락 | |
1998 | 162 | 114 | 48 | .704 | 지구 1위 | WS 우승 | |
1999 | 162 | 98 | 64 | .605 | 지구 1위 | WS 우승 | |
2000 | 161 | 87 | 74 | .540 | 지구 1위 | WS 우승 | |
2001 | 161 | 95 | 65 | .594 | 지구 1위 | WS 준우승 | |
2002 | 161 | 103 | 58 | .640 | 지구 1위 | DS 탈락 | |
2003 | 163 | 101 | 61 | .623 | 지구 1위 | WS 준우승 | |
2004 | 162 | 101 | 61 | .623 | 지구 1위 | CS 탈락 | |
2005 | 162 | 95 | 67 | .586 | 지구 1위 | DS 탈락 | |
2006 | 162 | 97 | 65 | .599 | 지구 1위 | DS 탈락 | |
2007 | 162 | 94 | 68 | .580 | 지구 2위 | DS 탈락 | |
연도 | 소속팀 | 경기수 | 승 | 패 | 승률 | 정규시즌 | 포스트시즌 |
2008 | 162 | 84 | 78 | .519 | 지구 1위 | CS 탈락 | |
2009 | 162 | 95 | 67 | .586 | 지구 1위 | CS 탈락 | |
2010 | 162 | 80 | 82 | .494 | 지구 4위 | - | |
총계 | 4329 | 2326 | 1997 | .538 | WS 4승 2패 5CS 4DS | ||
7. 은퇴 후 [편집]
은퇴 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운영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.
2011년 말~2012년 초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수전에 참가한다고 하여 관심을 모았지만, 찌질한 구단주 맥코트와 싸우는 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한다. 결국 최종적으로 스탠 카스텐-매직 존슨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.
2012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. 하지만 "선수를 무사히 구단에 돌려보내는 것이 최대의 일"이라는 발언을 하고[10] 영 좋지 않은 투수교체와 선수기용 등으로 많이 까였으며 미국은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.좆또레
2013년 12월 9일 바비 콕스, 토니 라 루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 만장일치로 헌액된 세 감독의 승수가 총 7558승(...)으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팀의 통산 승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고, 투표에 나올 선수들이 다들 메이저리그 역사에 빛나는 전설들[11]이라 2014년 치러질 헌액식은 사상 전무후무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게 중론이다.
뉴욕 양키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6번을 달아서 한 자리수 등번호를 받은 인물로는 2번을 단 데릭 지터와 함께 생존해 있는 사람.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면서 2014년 8월 23일자로 그의 등번호 6번이 양키스에서는 이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.# 이제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도 영구결번되면서 뉴욕 양키스에서 한 자리 등번호는 달 수가 없다고 하지만...아직 '0'번이 남아 있다. 그리고 2019년 FA 자격을 얻은 특급 불펜투수 애덤 오타비노가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0번을 달게 되었다.
2011년 말~2012년 초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수전에 참가한다고 하여 관심을 모았지만, 찌질한 구단주 맥코트와 싸우는 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한다. 결국 최종적으로 스탠 카스텐-매직 존슨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.
2012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. 하지만 "선수를 무사히 구단에 돌려보내는 것이 최대의 일"이라는 발언을 하고[10] 영 좋지 않은 투수교체와 선수기용 등으로 많이 까였으며 미국은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.
2013년 12월 9일 바비 콕스, 토니 라 루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 만장일치로 헌액된 세 감독의 승수가 총 7558승(...)으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팀의 통산 승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고, 투표에 나올 선수들이 다들 메이저리그 역사에 빛나는 전설들[11]이라 2014년 치러질 헌액식은 사상 전무후무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게 중론이다.
뉴욕 양키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6번을 달아서 한 자리수 등번호를 받은 인물로는 2번을 단 데릭 지터와 함께 생존해 있는 사람.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면서 2014년 8월 23일자로 그의 등번호 6번이 양키스에서는 이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.# 이제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도 영구결번되면서 뉴욕 양키스에서 한 자리 등번호는 달 수가 없다고 하지만...아직 '0'번이 남아 있다. 그리고 2019년 FA 자격을 얻은 특급 불펜투수 애덤 오타비노가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0번을 달게 되었다.
8. 둘러보기 [편집]
197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| ||||
→ | 조 토레 (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) | → | ||
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5번 | ||||
스탠 로파타 (1960) | → | 조 토레 (1960~1968) | → | 할 킹 (1970~1971) |
뉴욕 메츠 등번호 9번 | ||||
조지 테오도르 (1973~1974) | → | 조 토레 (1975~1981) | → | 브루스 보치 (1982) |
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9번 | ||||
루이스 고메즈 (1980~1981) | → | 조 토레 (1982~1984) | → | 아지 버길 (1986~1988) |
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2번 | ||||
팀 존스 (1988~1989) | → | 조 토레 (1990) | → | 밥 맥쿨러 (1991~1992) |
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9번 | ||||
테리 팬들턴 (1984~1990) | → | 조 토레 (1991~1995) | → | |
뉴욕 양키스 등번호 6번 | ||||
토니 페르난데스 (1995) | → | 조 토레 (1996~2007) | → | |
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6번 | ||||
토니 아브레유 (2007) | → | 조 토레 (2008~2010) | → | 아론 밀스 (2011) |
{{{#ffffff [[뉴욕 메츠|뉴욕 메츠]] 역대 감독}}} | ||||
조 프레이저 (1976~1977) | → | 조 토레 (1977~1981) | → | 조지 뱀버거 (1982~1983) |
{{{#ffffff [[애틀랜타 브레이브스|애틀랜타 브레이브스]] 역대 감독}}} | ||||
바비 콕스 (1978~1981) | → | 조 토레 (1982~1984) | → | 에디 하스 (1985) |
{{{#ffef00 [[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|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]] 역대 감독}}} | ||||
레드 셰인딘스트 (1990, 대행) | → | 조 토레 (1990~1995) | → | 마이크 요한슨 (1995, 대행) |
{{{#ffffff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|로스엔젤레스 다저스]] 역대 감독}}} | ||||
그래디 리틀 (2006~2007) | → | 조 토레 (2008~2010) | → | 돈 매팅리 (2011~2015) |
[1] 1965년 시즌 후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애틀랜타로 연고를 이전했다.[2]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은 조 토레를 포함해서 케이시 스텡겔(1949-1953, 뉴욕 양키스), 조 매카시(1936-1939, 뉴욕 양키스)까지 세 명 뿐이다. 그 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딕 윌리엄스(1972-1973), 알 닥(1974) 감독 체제 하에 월드시리즈 3연패를 차지한 적 있다.[3] 참고로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이기도 하다. 조 토레 외 한 경기 병살타 4개를 친 선수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스 고슬린과 빅터 마르티네즈가 있다.[4]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월드시리즈 3연패는 네번밖에 안나온 대기록이며, 특히 최소 11경기를 승리해야 하는 디비젼-챔피언쉽-월드 시리즈 체제가 확립된 1995년 이후는 유일무이하다.[5] 동부지구 꼴찌. 이때만 해도 각 리그는 동부와 서부 둘로만 나뉘어 있었다.[6] 이건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영구제명으로 추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. 이 사이에 벅 쇼월터가 팀 성적을 끌어올려서 1993년부터 2-1-1의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버틴 것.[7] 1994년에도 지구 1위를 달렸지만, 시즌 도중 벌어진 선수단 파업으로 잔여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모조리 취소되는 바람에 지구 1위 기록은 리그 역사에 적히지도 못하고 취소되어 버리고 가을야구도 못 갔다. 안습(...)[8] 결과는 디비젼 시리즈 탈락[9]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하자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500만불의 연봉에 포스트시즌 단계마다 100만불, 월드시리즈 진출시 1년 계약 연장과 함께 800만불을 지불하는 계약을 제시했다. 구단에 장기간 헌신한 감독에게 모욕적인 처사였다.[10] 메이저리그에서 WBC를 어찌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. 이래놓고 야구의 세계화를 바라면... [11] 약물 혐의가 확실한 선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렉 매덕스, 톰 글래빈, 프랭크 토마스 등의 전설들이 쏟아져나와 결국 2014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. 그밖의 명전 헌액 후보자로 크레익 비지오나 제프 배그웰도 빨리 헌액되기는 힘들어보이고 커트 실링과 새로 합류하는 마이크 무시나도 장수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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